오델로.

양귀비도, 만다라케도...
이 세상의 그 어떤 마법의 약을 들이킨다 해도, 어제까지의 달콤한 잠은...

두 번 다시 그대들의 것이 되지 못하리.

윌리엄 세익스피어 <오델로> 제3막 제2장
<성의 안뜰>에서

 

언제였던가?? 이 글을 본 때가...

by 와리프 | 2006/07/17 18:25 | 트랙백 | 덧글(0)

Invictus

Out of the night that covers me,
Black as the Pit from pole to pole,
I thank whatever gods may be
For my unconquerable soul.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
온통 칠흙 같은 암흑
억누를 수 없는 내 영혼에
신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라도 감사한다.


In the fell clutch of circumstance
I have not winced nor cried aloud,
Under the bludgeonings of chance
My head is bloody, but unbowed.

잔인한 환경의 마수에서
난 움츠리거나 소리내어 울지 않았다.
내려치는 위험 속에서
내 머리는 피투성이지만 굽히지 않았다.


Beyond this place of wrath and tears
Looms but the horror of the shade,
And yet the menace of the years
Finds, and shall find me, unafraid.

분노와 눈물의 이 땅을 넘어
어둠의 공포만이 어렴풋하다.
그리고 오랜 재앙의 세월이 흘러도
나는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


It matters not how strait the gate,
How charged with punishments the scroll,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문이 얼마나 좁은지
아무리 많은 형벌이 날 기다릴지라도 중요치 않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 William Ernest Henley (영국 시인 윌리엄 헨리) 의 시 인빅투스 (Invictus . 1975)

 

 

그리고... 오클라호마 미 정부종합청사 폭탄테러범인

 

티모시 멕베이가 사형직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시...

 

 

 

 

Are you the master of your fate?

by 와리프 | 2006/07/17 18:24 |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누가 알겠어??



                                  Who know What fantastic things are in store just around the corner?
 

by 와리프 | 2006/07/17 18:21 |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펌글]그 녀석에 관한 7개의 에피소드

에피소드1: 이 녀석이 바보일 지로 모른다고 생각한 경험담 (1)


어느 날 아주 지루했던 영국 문화사 강의 시간에 녀석은 내게 제안을 했다. 의성어가 포함된 싯구를 하나씩 만들어 교환하자는 거다. 한때 유행했던 3행시 같은 건데 주제어를 하나씩 불러주면 거기에 대한 짧은 시를 지어야 하고 꼭 의성어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루한 강의를 듣느니 그게 재미있겠다 싶어 시작을 했는데...

녀석이 '눈'을 주제어로 던져 주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나는 "눈이 雪雪 내린다" 머 대충 이런식으로 지어서 되돌려 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녀석이 이상하게 바라보며 "눈이 눈눈 내린다가 모야?" 그러는거다. "이 자식이...얌마 눈이 설설 내린다지 눈눈 내린다로 읽으면 어캐?"

"형 바보 아냐? 이게 '설 눈'자 잖아."
"이 씨방새가...너 바보 아냐? 이게 '눈 설'자지 어캐 '설 눈'이냐? 너 학생 맞아?"
"으구. 형 대학에 돈 주고 들어왔지? 요즘 대학생들 한자를 모른다더만...정말.."
"(어이없는 표정으로) 야이 씹새야. 이따 확인하고 틀린 ? 弔?술 사기다..."

물론 녀석은 수업 후 술을 사야만 했다.

자신은 술을 사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집에가서 옥편을 찾아 본 다음에야 비로소 인정을 했다.

쩝...



에피소드2: 이 녀석이 바보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경험담 (2)


옛날에 한창 유행하던 이승복 어린이 씨리즈가 있었다. 공산당이 싫어요가 아니라 콩사탕이 싫어요 라고 했다던 조금은 썰렁한 모 그런거였다. (다덜 기억하지?)

나는 최신 버전을 입수하고는 얘들 모아놓고 열심히 얘기 했다. 그러나, 남들은 다 웃기다고 박장대소를 하는데 그 후배넘만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을 한다.

“형. 바보아냐? 그게 무슨 이승복이야? 이승만 어린이지…”

이승만…쩝…

할 말이 없었다.


에피소드3: 그러나, 녀석이 순진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바꿨던 경험담 (1)


자취생들의 생활이 대개 그렇듯이 여느 날과 같이 술 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날의 안주는 쥐포 몇 마리…한 두잔씩 쐬주가! 목구녕으로 넘어가고 얼굴이 붉어질 무렵 갑자기 그 후배 넘이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었다.

“형들. 그래 나 철자도 자꾸 틀리고 그래. 나도 내가 어캐 대학에 들어왔는지
잘 몰라.”

(다덜 갑작스런 녀석의 행동에 시선을 집중하고 녀석을 바라봤다)

(분위기 파악 못했던 어떤 자식: 국어 못해도 딴 거 잘하면 들어와. 하하하) -> 썰렁한 웃음이었다.

“갑자기 쥐포를 보니 눈물이 나와. 난 국민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사업에 망해서 집도 없었어. 아버지는 구루마를 끌고 쥐포 장사를 시작했는데 동생하고 나 하고 항상 구루마에 태우고 다녔어. 배고프고 춥다고 칭얼대면 아버지는 쥐포를 주시곤 했는데 그래서 쥐포만 보면 그때가 생각나. 난 글자 공부보다는 쥐포 냄새하구 그거 잘 굽는 법을 먼저 배운거야….”

(쩝…쪽 팔리게도 다같이 녀석을 부둥켜 안고 울었다. 난 지금 말한다. 그때 울었던 거는 다 술기운 때문이라고…)


**보너스판 경험담

녀석의 아버지는 쥐포 장사로 시작했지만 재기에 성공하셔서 결국 쥐포 공장 사장님이 되셨다. 그 일이 있고 ? ?후 우린 쥐포를 살 때마다 봉지 뒤편에 적힌 제조 공장을 확인하게 되었고, 어느 날 드디어 발견한 녀석네 공장의 제품을 사 들고 왔을 때 모두들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상표 이름은 “똘똘이 쥐포”

녀석을 불러서 술을 마시며 다 같이 녀석을 구타했다.

“이 致態? 너희 집은 쥐포마저도 똘똘한데 넌 왜 그래?”

(녀석은 돌림 빵을 당하면서도 자기네 공장 제품을 이렇게 먼 곳에서도 발견해서 기쁘다며 싱글벙글했다)



에피소드4: 그러나, 녀석이 순진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바꿨던 경험담 (2)


녀석은 마음이 무척 여렸다. 술을 마시다가 인생이 어쩌고…낭만이 어쩌고….모 이따구의 얘기가 조금만 깊어지면 눈물을 글썽거렸다. 조금만 더 강도를 높이면 그 날 술값을 녀석이 내게끔 수순이 짜여져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접으려고 하면 우리는 항상 똑 같은, 녀석의 마지막 맨트를 들을 준비를 해야만 했다.

“형들아, 오늘 술값 내가 낸다. 밤 하늘 보면서 밤새도록 얘기해 보자.”

그래도 공짜 술이 고프면 학교 잔디밭에 앉아 지겹도록 인? 萱? 낭만이 어쩌고 저쩌고 이런 따위의 얘기를 밤새도록 진행해야만 하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지루함을 느끼지만 녀석의 진지한 눈빛을 거스르기 힘들 때면 6, 70년대식의 문어체로 이렇게 얘기하면 잠을 자러 갈 수 있었다.

“남용되는 낭만에선 더 이상의 즐거움을 찾을 수가 없으리…보라. 황량하고
어두운 90년대의 밤 빛에 까맣게 젖었던 우리들이 이젠 저기 떠오른 달빛에 마음마저 하얗게 말리지 않았더냐. 낭만의 아름다움은 아쉬움으로 맺을 때 더욱 빛을 발하는 법. 자 이제 가자. 내일도 느껴야 할 낭만의 저장을 위해!!!”

녀석의 아쉬움은 당장에 기쁨으로 변해 집을 향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보너스판 경험담


녀석에게 술을 뜯어 먹는 방법은 또 한가지가 있다. 고향이 부산인 녀석에게 이렇게 전화하면 된다.

(경상도 말투를 흉내내서 ? 평소에 녀석은 서울말씨를 쓴다)

“야 내다. 정말 반갑데이”
“어…누고?”
“내다. 니 보고 싶어서 여까지 안 올라왔나.”
“어…야…니 정말 오랜 만이데이” (---> 누가 전화 거는 지도 ! 모르면서…)
“야. 여까지 니 때문에 올라왔는데 술 안 사나. 여기 니 학교 교문 앞이니까, 돈 들고 얼능 오거래이.”
“하모. 내 당장 갈 테니까 쬠 만 기다려라.”

교문 앞에 기다리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곤 녀석은 반가운 얼굴로 달려온다.
“아. 형들도 여기 있었네.” (이번에 서울말씨다)
“야, 쐬주 한 잔 하러가야지”
“어..근데 나 오늘 약속 있거든. 친구가 부산에서 와서 말야…”
“어래? 아야 내가 전화했데이. 어여 가자. 술 마시러…”

그러나 녀석은 이 정도에서 사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놀리지 말라며 교문 앞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나중엔 황당해 하지만 결국 녀석은 기쁜 얼굴로 대포 집에 가게 된다.

우리는 이 방법을 세 차례 써 먹었다. 물론 녀석은 세 번 속았다는 말이다.



에피소드5: 녀석이 똘똘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경험담


난 학교를 중퇴하고 외국 땅에 나왔다. 그런데 이 후배 넘이 1주일 예정으로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본인이 사는 곳까지 찾아왔다. 물론 여행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녀석이 왔! 을 땐 본인은 열나게 알바를 하러 다닐 때였고 저녁 늦은 시간 아니면 별로 만날 수가 없었다.

공항으로 나가서 녀석을 마중하고는 저녁 내내 예전 추억담을 떠 올리며 모처럼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물론 녀석은 자기네 상표의 쥐포를 가져왔다.^^) 그리곤 다음 날에 녀석은 5일 예정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5일 예정으로 간다는 넘이 다음 날 저녁 때 돌아와서 하는 말.

“형아, 하루 돌아 댕기니까 여기 여행 다 한거 같다. 옛날처럼 우리 얘기나 하자. 쥐포도 있는데…“

녀석은 또 인생과 낭만이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들으러 온 것 같았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녀석이 돌아갈 때 즈음 내 통장 번호를 물었다. 왜 그러냐는 질문에 학교 동기들이 일종의 장학금 부쳐 준다고 통장 번호 알아 오라고 그랬다고 했단다. 나는 기특한 자식들 하면서 흔쾌히 알려줬다.

알바 땜시 공항까지 배웅하지는 못했지만 기차역에서 헤어질 때 또 쪽 팔리게도 눈물이 났다. 칠칠 맞은 녀석은 벌써 눈물을 흘리고 있다.

“얌마, 꿈을 잃지 마. 그리고 쪽 팔리니까 돌아보지 말고 걍 가라.”

꿈을 잃지 말? 眉遮?말은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기차역 앞에서 대단히 유치한 영화 한 편을 찍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니…내가 왜 그따구 말을 했나? 젠장. 그 때를 생각하니 갑자기 쪽 팔려온다.

아무튼 녀석은 돌아갔고 한달 인가 후에 정말 돈이 왔다. 동기 넘들이 고마워서 전화를 때렸건만 녀석들은 자기네들은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내게 부칠 돈 있으면 쐬주나 한 잔 더 묵지 돈이 남아도냐고 오히려 욕만 먹었다. 혹시 은근히 돈 부치라는 압력이 아니냐는 의심과 함께…(그런 넘들이 내 친구다)

나중에 돈의 출처를 알게 되었다.

당시 그 후배 넘이 놀러 와서 조금 비참했던 내 생활상을 보고 귀국 후 수업도 팽개치고 열나게 노가다를 하러 다녔다고 한다. 내게 부쳐 준 돈은 녀석이 일해서 모은 돈이었다. 후배 넘은 자기가 돈을 보내 준다면 내가 자존심 상해 할 까봐 동기 형들이 시켰다고 거짓말을 한 것 이었다. (생각보다 똘똘한 놈이었다)

개쒜끼…난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인데 그 씨방새 땜에 한참을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고맙다. 이 개쒜야…


에피소드6: ! 다시 녀석이 바보가 아닌가 생각을 바꾸게 된 경험담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녀석과의 연락이 갑자기 두절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녀석네 쥐포 공장이 부도가 나서 집안 식구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는 거다. 빚쟁이 들은 몰려오고 그 와중에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한마디로 풍비박산 난 것이었다.

그러다, 어찌 어찌해서 녀석이 얹혀 살고 있는 그 친구 넘의 자취방 전화 번호를 알아내서 전화를 해봤다. 녀석은 무척이나 반가와 했는데 한편으로는 안절 부절 못하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는 질문에 녀석의 대답은
“형, 여기 전화 번호 어캐 알았어? 나 전화 통화 오래 못해. 아마 이거 도청 되고 있을 지도 몰라. 빚쟁이들 때문에…”

다른 가족들의 안부를 묻지도 못하고 나는 전화를 끊을 수 밖에 없었다.

도청은 무슨….
그간의 녀석이 보여 준 업적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빚쟁이들에게 시달린 녀석의 정신적인 충격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고 애써 좋게 생각하고 있다)


에피소드7: 그래도 난 그 녀석을 좋아한! 다.


그 마지막 전화 이후 녀석과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얼마 전 학교 동창 넘이 결혼을 했고, 축하한다는 전화를 하다 녀석에 대해 물었더니 누군가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는데 몰라보게 변했다는 것이다. 예전의 어리한 면은 없어지고 말하는 것도 대단히 날카로와 졌다고 한다. 누가 만났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만난 넘은 그 후배 넘에게 많은 실망을 했었다고 한다. 녀석이 세상의 풍파를 너무 심하게 맞더만 많이 변했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나도 기분이 찜찜했다. 그 녀석이 그렇게 변할 리가 있나……

그런데 그렇게 변했다는 후배 넘에게서 얼마 전 메일이 날라왔다.

녀석의 메일을 받고 나는 세가지에서 감격했다.

첫째, 이 넘이 드디어 21세기 문명의 혜택을 입고 이메일을 보낼 줄 알게 되었다는 것과 둘째로, 위드에서 한글 맞춤법 확인을 했는지 이번에는 오타가 없었다는 것. 마지막 셋째로는…

과거의 추억 담을 적어 놓고 혼자 그 감상에 다 빠져서 허우적 거리더니 나중에 이런 말로 메일을 맺었다.

“형, 나 아직도 꿈을 잃지는 않았어.”

씨방새…! 나를 또 한 번 울게 만들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꿈을 잃지 말라는 말은 녀석을 감동시키기에 가장 편리했던 말로 녀석에서 공짜 밥이나 술을 뜯어 먹을 때 내가 가장 많이 사용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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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모름...

by 와리프 | 2006/07/17 18:19 |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울지 말아요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개똥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나서지

바람이 차다고 고단한 잠에서 아직 깨지 않았다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거라네

아차 하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쉽상이지
화투판 끗발처럼 어쩌다 좋은 날도 있겠지만
그거야 그때 뿐이지

어느 날 큰 비가 올지 그 비에
뭐가 무너지고 뭐가 떠내려갈지 누가 알겠나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

개똥 같은 희망이라도 하나 품고 사는 건 행복한 거야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쌍한가
자! 한잔 들게나

되는 게 없다고 이놈의 세상
되는 게 좆도 없다고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야!
 

- 백창우 [소주 한 잔 했다고 하는 얘기가 아닐세] -

by 와리프 | 2006/07/17 18:18 |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삶에 도움이 될만한 명언

★ 우리는 가끔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 내 인생에 학창시절을 뺀다면 나는 반밖에 살지 못한 것이다.

★ 다른 사람의 길을 밝혀주기 위해서 등불을 켜면 결국 자기도 밝혀주게 된다.

★ 경험이 부족한 이들이 가장 자주 하는 실수는 하나를 아는데도 셋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 잘못은 안하는 것보다 인정하는 것이 더 힘들다.

★ 가장 절망적일때 가장 간절한 희망이 나온다.

by 와리프 | 2006/07/17 18:17 |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스탠포드대 졸업 축사 - 스티브 잡스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답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가지만요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 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사람이어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았을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한 순간, 흥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관심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한 병당 5센트씩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하레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예를 든다면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구요.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타이포그래피를 위대하게 만드는 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전 매료되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들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에서 남들과는 다른 모든 '차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처음 1년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 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했습니다.

I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를 만들고,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쁜 일들중 어떤 한가지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로 인생이 당신의 뒷통수를 때리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할, 제가 사랑하는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매일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왜냐구요?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죽음' 을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 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 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달안에 다 해치워야된단 말이었고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십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위해 죽고 싶어하지는 않죠.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은 '인생들'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 중에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 않은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쇼.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쇼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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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Don't lose faith.

Don't lose....

Don't ....



by 와리프 | 2006/07/14 11:41 | 이야기 | 트랙백(1) | 덧글(0)

생활속의 법칙들

* 머피의 상수(常數)
물건이 망가질 확률은 그 가격에 비례한다.

* 클립스타인의 법칙 (시험제작과 생산에 대한 응용)
- 16번째의 맨 마지막 나사를 다 풀기까지는, 자신이 엉뚱한 커버를 떼어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 엑세스 커버에 달려있는 16개의 나사를 모두 잠그고 나서야 자신이 가스켓을 끼워넣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질레트의 이사법칙
전번 이사 때 없어진 것은 다음번 이사 때 나타난다.

*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모든 물체의 위치를 동시에 알 수는 없다.
[발전형] 없어진 것 하나를 찾아내면, 다른 것 한 개가 없어진다.

* 오브라이언의 고찰
어떤 것을 가장 빨리 찾아내는 방법은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을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 얼간이 법칙
찾는 물건은 항상 마지막에 찾아보는 장소에서 발견된다.

* 얼간이 법칙에 대한 블로크의 반론
찾는 물건은 항상 맨 처음 찾아보는 장소에 있는데도, 처음에 찾을 때에는 발견하지 못한다.

* 듀드의 2원성 법칙
두 가지 사건을 예상할 수 있는 경우, 보다 좋지 않은 쪽이 발생한다.

* 비정상적인 조직에 대한 오웬의 이론
모든 조직에는 비적임자를 위한 부서가 마련되어 있다.
[발전형] 전임 비적임자가 떠나면, 즉각 후임 비적임자가 충원된다.

* 미국 권투선수 R.피츠시먼의 코멘트
머리가 크면 클수록, 넘어졌을 때 쇼크도 크다.

* 일급부하의 제 1 법칙
상사보다 자신이 더 유능하다는 사실을 절대로 상사가 깨닫게 해서는 안된다.

* 임호프의 법칙
관료조직은 정화조와 매우 비슷한 구석이 있다. 커다란 오물덩이는 늘 위에 떠 있다.

* 올드와 칸의 법칙
회의의 효율성은 참가자 수와 토의 시간에 반비례한다.

* 토론의 제 1 법칙
바보와 언쟁하지 마라. 어느 쪽이 바보인지 구별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 소시지의 원리
소시지를 좋아하는 사람과 법을 존중하는 사람은 그것을 만드는 과정을 결코 보아서는 안된다.

* 토드의 정치의 2대 원리
1. 정치가가 무엇을 말하고 있든, 그것은 모두 진실이 아니다.
2. 정치가가 무엇을 말하고 있든, 그것은 돈 이야기다.

* 돈 역학의 제 1 법칙
뜻밖의 수입이 생기면, 반드시 뜻밖의 지출이 그만큼 생긴다.

* 에머슨의 고찰
어느 천재의 위업에도 스스로 거부해 버렸던 우리 자신의 아이디어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 위대한 인물의 규칙
당신이 대단히 존경하는 인물은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마 그 때에도 점심식사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 워렌의 규칙
누가 전문가인지를 알고 싶으면, 작업시간은 가장 길게, 비용은 가장 높게 책정하는 사람을 찾으면 된다.

*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제 1 법칙
고수입의 화급한 일은 저수입의 화급한 일을 계약한 뒤에야 들어온다.

*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제 2 법칙
바쁜 일들은 모두 마감날이 같다.

*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제 3 법칙
철야한 일은 적어도 이틀 동안 그대로 묵히게 된다.

* 앤터니의 작업장의 법칙
작업대에서 공구가 떨어지면, 가장 성가신 장소로 굴러간다.
[발전형] 공구는 떨어뜨린 사람의 발등을 우선 찧고 나서는 성가신 장소로 굴러간다.

* 비디오 데크의 규칙
비디오의 가장 고가의 특수한 기능은 결코 사용되지 않는다.

* 페트의 실험실 법칙
성공한 실험은 결코 재현하지 마라.

* 현대과학의 지침
- 녹색을 띠었거나 꿈틀거리면, 생물학이다.
- 역겨운 냄새가 나면, 화학이다.
- 도움이 되지 않으면, 물리학이다.

* 현대과학의 지침에 대한 서프의 연장
- 이해할 수 없으면, 수학이다.
- 사리에 맞지 않으면, 경제학이나 심리학이다.

* H.L 멘켄의 법칙
할 수 있는 자는 실행한다. 할 수 없는 자는 가르친다.

* H.L 멘켄의 법칙에 대한 마틴의 확장
가르칠 능력이 없는 자는 관리한다.

* 머피의 학기말 리포트에 관한 법칙
학기말 리포트 완성에 꼭 필요한 책이나 정기간행물은 도서관에서 증발해 버린다.
[발전형] 가까스로 손에 넣은 책도 가장 중요한 페이지가 찢겨 있다.

* 업무에 관한 머피학의 6개 법칙
1. 오류가 없는 중요한 편지는 우송과 동시에 오류가 있는 편지가 된다.
[발전형] 보스가 읽는 동안 편지의 오류는 2배나 눈에 띄게 된다.
2. 근무시간 중 정상으로 작동하는 사무기기는, 사사로운 목적으로 쓰려고 일과 후에 돌아오면 틀림없이 고장이 나 있기 마련이다.
3. 고장난 기기는 서비스먄이 당도하면 정상으로 작동한다.
4. 침칠을 해도 붙지 않는 봉투나 우표는 원하지 않는 데에는 여지없이 달라붙는다.
5. 중요한 서류는 당신이 놓아둔 장소에서 당신이 찾을 수 없는 장소로 이동함으로써 활력을 과시한다.
6. 마지막으로 퇴직했거나 해고된 사람은 직장에서 일어난 모든 불상사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 쓴다. 그것은 뒤이어 누군가가 그만두거나 해고될 때까지이다.

* 에토레의 고찰
다른 쪽 줄이 더 빨리 줄어든다.

* 에토레의 고찰에 대한 오브라이언의 변형
빨리 줄어드는 줄로 옮기면, 원래 있었던 줄 쪽이 더 빨리 줄어들기 시작한다.

* 레이놀드의 기후학 법칙
바람의 속도는 머리손질 비용과 비례한다.

* 존즈의 동물원과 박물관 법칙
가장 흥미로운 것에는 이름표가 붙어있지 않다.

* 에드의 방사선과의 법칙
엑스레이 촬영대가 차가우면 차가울수록, 그만큼 더 몸을 밀착시켜 달라는 지시가 따른다.

* 모저의 스포츠 관전 법칙
화끈한 플레이는 득점판에 눈길을 돌릴 때나 핫도그를 사러 갈 때 이루어진다.

* 와그너의 스포츠 보도 법칙
카메라 초점을 맞춘 순간, 남자선수들은 으레 침을 뱉거나 코를 후비거나 사타구니를 긁거나 한다.

* 교통정체의 제 1 법칙
정체되고 있는 차선은 당신의 차가 빠져 나오자마자 소통되기 시작한다.

* 파우스너의 집안일 규칙
무딘 칼이 손가락은 잘도 밴다.

* 스코프의 법칙
아이들은 더러운 바닥에는 아무 것도 흘리지 않는다.

* 밀턴의 페인팅 법칙
잘못 칠한 페인트는 재료와 성질에 관계없이 절대로 벗겨지지 않는다.

* 쇼핑백의 법칙
집에 가는 길에 먹으려고 생각한 초콜릿은 쇼핑백 맨 밑바닥에 있다.

* 호로위츠의 법칙
라디오를 틀면 언제나 가장 좋아하는 곡의 마지막 부분이 흘러나온다.

* 최후의 법칙
안될 듯한 일이 뜻밖에 잘 풀리는 경우, 안되는 쪽이 결과적으로 이로울 때가 많다.

by 와리프 | 2006/07/14 10:21 | 이야기 | 트랙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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